2011년 12월 16일
천년마다 한 번 오는 은하철도 999
일을 마치고 삼성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의 10년만에 강남 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게됐다
(여태까지 재활하며 일하는 동안 출퇴근 시간에 다녀본 적이 없다. 평소에는 탈 일이 없었고)
도저히 뭐라고 표현 못할,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에 찌부되어 죽을 뻔했다
도저히 탈 수 없는 용량인데 전역에서 탄 만큼의 인간들이 마구마구 밀고 들어온다
삼성, 선능, 역삼, 강남역, 교대...
천년에 딱 한 번 온다는 은하철도 999를 기다리는 수백만의 사람들처럼 역마다 가득하고
타면 정말 안될 것 같은데 계속.. 계속.. 계속.. 들어오고 들어온다
마치 이번 열차를 놓치면 천년을 또 기다려릴까 두려워 하듯
멀리서 보면 밀치고 들어오는 숙련된 폼과 진각이
매우 잘 훈련된 해병대 수색대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자다;
그녀들은 이제 막 회사 입사한 듯한 애띤 얼굴인데
밀어부치는 힘은 근력으로 키워진 카다피의 하이힐 여군같다
"아니 다들... 이걸 어떻게 적응하고 사는거지??;;"
나는 힘들어서 절로 신음소리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옆에서 밀려 허리가 꽈배기처럼 휘는데도 얼굴 빛이 의연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시계 하나 들고 바쁘다고만 외치는 정장입은 토끼처럼 아무렇지 않다
그럼 나만 아무런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틈새에서 스마트 폰을 하며 낄낄댄다
나는 서있기도 힘든데 이 틈에서 스마트 폰을 보며 낄낄거리다니...
이것은 진정 고수...
왜 친구들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귀여운 여동생들은 평소엔 조금만 삐져도 온갖 짜증을 부리는데 왜 이런 출퇴근 고난에 대해서는 함구했던 것일까?
그들은 모두 이 동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직장인들인데...
이젠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말도 안하는 것일까?
운전하는 남자가 좋다는 그녀들이 재잘거림이 이제서야 정상으로 보인다
그동안 마귀할멈 취급해서 미안하다. 오래비를 죽여라;
그녀들은 생존을 바랬던 것이다
그와중에 사람들을 밀치고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난 사람의 빈자리를 매의 눈으로 보고
그 자리로 가기 위해서 저 멀리에서부터 겹겹히 쌓여있는 해병대 수색대, 카다피 하이힐 여군 친위대들을 다 밀치고...
밀치고... 밀치고 나타난 할아버지 용사는 카툰 만화의 실사같았다
그렇다 이 은하철도는 서있기만해도 길이 열리고 자리의 사람이 일어서며 양보하는 천국 좌석이 아니라서
노약자가 앉기도 서있기도 너무나 힘겹다
아직 오른발바닥 감각이 회복이 안되어서 운전을 못하지만
언젠가 악셀을 밟아도 이 지하철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삼성에서 홍대오는데 무려 1시간 10분.
내가 탄 것은 지하철인데 이거 도대체 무엇인가;;
앞으로 강남 사는 애들에게 "홍대오면 만나주지" 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지하철이 막혀서 늦었어요 오빠!" 라는 말을 개뻥으로 취급해서 미안했다
특히 퇴근 러쉬타임엔 더더욱...
# by | 2011/12/16 22:33 | 트랙백




